뱁새가 깊은 수풀에 둥지를 짓는데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
초료 소어심림 불과일지(鷦鷯 巢於深林 不過一枝)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이소영<br>문화로드 대표<br>교육학박사<br>
이소영
문화로드 대표
교육학박사

옛 태평시대 요임금은 천하를 잘 다스릴 후계자를 찾아 왕위를 넘겨주고자 했다. 현명하다고 소문 난 허유를 찾아간 요임금은 ‘모자란 자신이 다스리던 천하를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허유는 ‘세상은 이미 다 다스려지고 있다’며 일언지하에 요임금의 제의를 거절하고 밤새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허유는 꺼릴 것 없이 마음 편하게 살려면 깊은 수풀에 사는 뱁새가 나뭇가지 하나로 둥지를 만들듯 무엇도 탐하지 말라고 한다.  
이제 막 시즌2를 시작한 ‘펜트하우스’는 타인의 욕망덩어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라마이다. 100층 아파트 최고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 사는 드라마 속 주인공 주단테는 건축회사 대표로 부동산의 귀재이다. 아이들은 명문대를 갈 수 있다는 명문 청아예술고를 다닌다. 그들은 경제력과 학벌을 쥐고 모든 이들을 내려다본다. 이에 반해 그 아래 사는 사람들은 펜트하우스를 올려다보며 그들이 가진 것을 가지려고 욕망한다. 
사람은 날 때부터 무엇을 가지고 싶다거나 간절하게 바라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보면서 나는 없는데, 또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나도 하고 싶은데 하면서 마음속에 꾸역꾸역 욕망을 집어넣는다. 상대방의 욕망을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면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극단적인 피라미드 형태를 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는 돈과 명문대를 위해 못할 것이 없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막장드라마가 된다.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 천서진은 재력 있는 집안과 탁월한 성악 실력을 가졌다. 천서진은 자신보다 실력이 우수한 오윤희의 목을 다치게 해서 더 이상 노래를 못하게 한다. 또 아버지가 청아예고를 자신에게 상속하지 않겠다고 하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아버지를 방치해 죽게 한다. 두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났지만 천서진은 사건을 수습하고 비극적 결과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천서진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했기 때문이라고 남의 탓을 하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펜트하우스의 부모들은 자신처럼 자식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혹독한 자기관리를 강요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지원한다. 이런 부모들을 보며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을 자신의 것이라 착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욕망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자식은 부모의 욕망을 과도하게 짊어지면서 허덕거리고 상처를 입게 된다.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시청률이 높다. 사람들이 이런 막장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사람들은 펜트하우스가 있는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대중매체나 SNS를 통해 매일같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게 된다. 이런 접속을 통해 사람들은 점점 더 결핍을 느끼고 욕망을 키우고 이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된다.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남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도덕적 경계를 쉽게 무너뜨린다. 장면들은 비극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헛웃음이 나오는 희극이다. 사람들은 드라마가 비논리적인 전개일수록 안전한 거리감을 느끼며 더 쉽게 보게 되는 것이다.  
도시사람들은 뱁새처럼 나뭇가지 하나로도 부족함이 없는 깊은 수풀에 사는 게 아니다. 스스로 욕망하고 갈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아스팔트 위에 살고 있다. 허유도 요임금이 사는 궁궐을 보았다면 다른 대답을 했을지 모른다. 시간과 돈을 갉아먹는 욕망이 정말 나의 것인지, 진정한 나의 관심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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