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업과실치사법' 제정에 13년 소요
충분한 논의 통해 과잉처벌 문제 해소후 시행해야

건설업계 등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기계설비신문 김주영 기자] 건설업계가 지난 8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기업 경영이 사실상 '운(運)'에 달렸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과도하고 무리한 입법'이라는 주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은 산업재해시 기업과 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 산재나 사고로 노동자가 숨지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법인이나 기관도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를 두고 건설업계는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과하다고 지적한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1년 이상 징역과 같은 하한형의 형벌은 고의범에 부과하는 형벌 방식"이라며 "산업현장의 사망사고는 모두 과실에 의한 것임에도 이러한 형벌을 가하도록 무리수를 뒀다"고 지적했다.

이번 법안은 이중 처벌에 가깝다. 작년 1월 사망사고 처벌을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산안법에 따르면,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건단연 관계자는 "산안법을 시행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시행 성과를 보고 난 뒤에 법을 제정해도 늦지 않은데 일편향적인 여론에 밀려 제정안이 통과됐다"며 "법이 시행되기 전에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일반 다수가 수용 가능한 방향으로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건설업체들은 수백 개의 현장이 공사중단 위기에 처하는 점, 기업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데 따른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건단연에 따르면, 2019년도 기준 상위 10위권 이내 업체의 건설현장 수는 업체당 270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67개의 해외현장도 포함돼 있다.

단일 현장만 놓고 보면, 하루 투입 근로자 수는 500~1000명 수준이다. 50개 현장을 상시 가동하는 업체의 경우 하루 최소 2만5000명, 최대 5만명의 근로자가 현장에서 일하는 셈이다. 건설사 CEO가 현장에 상주한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건단연 측은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기업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면 기업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기업이나 CEO 통제범위 밖에 있는 일로 처벌을 받는 것은 기업의 운명을 말 그대로 운에 맡기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산업안전 정책은 '사후처벌'이 아닌 '사전예방'으로 바뀌고 있다.

EU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원인을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재원 부족, 안전보건 역량과 기술 부족, 안전보건 정보의 부족에 있다고 진단하고 제재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독일은 연간 근로자당 최대 500유로까지의 안전비용에 대한 세금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프랑스는 안전증진 기술개발투자에 대한 세금 혜택을 준다.

이탈리아는 산재보험료 결정 시 재해율 외에 재해예방대책 도입여부를 평가하고, 안전장비·유해환경 개선 등에 대한 보조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폴란드도 안전조치 비용을 지원한다.

김상수 건단연 회장은 "영국은 기업과실치사법을 제정하는 데 13년이나 걸렸다"면서 "국회에서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과잉처벌 등 법안의 문제점을 해소한 후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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