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진심까지 알아주는 사람은 드물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 -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

이소영
문화로드 대표
교육학박사

사람을 사귈 때 다른 사람과 구별해서 겉모습이나 얼굴을 아는 것은 식(識)이고, 그 사람의 내면까지 이해하고 진심을 아는 것은 지(知)이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아주는 관계가 흔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 탓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탓이기도 하다. 

남들이 요구하는 모습만 보여주다 보면 자신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이럴 때 누군가 자신의 거짓 없는 참된 마음을 알아준다면 정말 감사하며 힘이 될 것이다. 

영화 ‘벌새’에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이란 문장이 나온다. 주인공 은희에게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가 가르쳐주는 문장이다. 

은희의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선생님 영지는 몇 마디 말과 작은 행동만으로도 은희에게 충분한 위로를 준다.

영화 ‘벌새’는 1994년 중학교 2학년 은희가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이다. 

첫 장면에서 은희는 엄마의 심부름을 갔다 오면서 자신의 집인 줄 알고 아파트 아래층 문을 두드린다. 엄마를 크게 외쳐 부르지만 잘못된 문을 두드리니 당연히 열리지 않는다. 

잠시 후 은희는 자신의 착오를 알아채고 한 층을 올라 집으로 들어간다. 은희는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진 체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알았더라면 ‘무슨 정신을 가지고 다니냐?’며 책망을 했을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바보 같다는 비웃음을 살 가벼운 실수인데, 잠깐이었지만 은희에게는 믿었던 자신의 집이라는 공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엄청난 공포를 경험한다. 

이후 영화는 특별한 사건 없이 은희가 겪는 일상은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처럼 잘못된 문을 두드리듯 계속 주변사람들과 어긋나는 은희의 모습, 이런 불일치에서 불안이 전달된다.

가령 은희가 오빠가 자신을 때린다고 말하면 엄마는 오빠에게 대들지 말고 싸우지 말라고 한다. 

은희가 수술을 받게 되자 아빠는 엉엉 운다. 은희는 아프니까 관심을 받게 되어 좋은 듯 살짝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정작 아빠의 눈물은 은희보다 여자애가 가지게 될 흉터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은희의 주변사람들은 매사를 당연한 일상적인 듯 말하며 기존의 질서에 편승하며 살아간다. 이를 문제 삼는 은희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세상이 자신과는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은희에게 1994년 성수대교 붕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는 바람에 사고를 면했던 언니 때문에 잠시 은희의 정신과 마음도 산란해진다. 

그런데 뒤늦게 유일하게 자신을 진심으로 알아봐준 한문선생님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서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굳건하게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세상과 주변사람들, 그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소통이 가능했던 영지선생님의 죽음은 단번에 은희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누구도 은희의 상처난 마음을 볼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개 짓을 해야 간신히 제자리에 위치할 수 있는 영화 제목 벌새처럼 은희는 스스로를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사람들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스스로 불행하고 외톨이라고 느끼며 일탈행동을 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중2병’이라 그렇다며 단정한다. 

과거를 회상할 때 시간의 거리는 공간의 거리와 비등해서 멀수록 윤곽만 기억된다. 영화에서 멀리 보이는 나뭇잎들은 싱싱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나뭇잎들이 병들어 있는 게 보인다. 시들어 떨어지지 않으려면 불안과 부정적인 생각이 지나가도록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사춘기가 아니어도 살면서 몸과 마음이 새로운 상태로 넘어가는 시기를 경험한다. 

나를 지키는 마음으로 자기혐오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나의 진심을 알아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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