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업제한 유예’ 이끈 전설… “생산성 혁신 필요한 때”
국회 적극 공략해 설비업종만 유예 ‘단서 조항’ 확보
유능한 인재 유입 위한 연구 통해 업계 고충 해결해야

‘겸업 제한 폐지, 절대 안 된다.’ 2006년 7월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정부의 ‘겸업 제한 폐지’ 추진에 맞서 기계설비공사업종만 ‘4년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부칙을 이끌어 낸 전설같은 인물이 있다.

2005년부터 3년간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제6대 회장을 역임한 박종학 고문이 그 주인공이다. 인위적인 갑작스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침착하고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대응해 업계 권익을 지켜낸 박종학 고문을 만나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넘기고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담=김흥수 편집국장, 정리=김주영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건설업계는 물론 국가가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고문님 재임시기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텐데요.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회장 재임 당시 ‘겸업 제한 폐지’가 이슈였습니다. 이는 일반건설업체에게 전문건설업을 겸업할 수 있게 하려는 정부의 조치로 당시 여건상 ‘시행되면 하도급업체들은 다 문을 닫을 것’이란 두려움이 매우 컸던 사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를 찾아 반대 의견을 전달하려 했지만 담당자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길이 보였습니다. 실질적으로 법 개정작업을 하는 국회로 방향을 돌려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건설교통위원 27명 모두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위원들 머릿속에 기계설비업종을 건설업의 4대 중심축(건축·토목·기계·전기)으로 각인시켰고, 기계설비 특성을 이해시켰습니다. 이것이 주효해 19개 전문건설업종 가운데 설비업종만 유일하게 4년이라는 기간을 유예받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맞아 정부와 업계 차원의 대응책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 현업을 떠났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저는 ‘제 값 받고 일하는 풍토’ 조성을 꼽고 싶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건설 생산구조 상 하도급업체에겐 의무만 강조되는 실정입니다.

건설업은 레스토랑에 비유할 수 있는데 원도급자는 주방장으로 기술자격을 갖추고 심지어 감리까지 보유하면서 사업전반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나르는 서빙 담당자 격인 하도급자에게는 까다로운 기술자격을 요구하면서도 그에 걸맞는 권리가 없습니다. 

자격을 갖춘 업체라면 권리도 주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일은 시키는 대로  하고, 돈은 주는 대로 받아야 하니 억울한 일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태로는 원도급업체나 하도급업체 모두 상생 발전을 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는 하도급업체의 고통이 더 큰 만큼 하도급업체를 배려하고 동등한 동반자로 함께 발전해갈 수 있게 불공정하도급을 개선해야 합니다. 

올해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는 새로운 집행부(제11대)가 출범했습니다. 업계 원로로서 덕담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 제가 회장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흘렀는데 협회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 참 흐뭇합니다. 그동안 협회를 발전시켜온 역대 회장들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노고를 높이 치하합니다. 

협회가 출범 30년을 넘겨 성숙한 성인이 된 만큼 앞으로도 기계설비법 시대를 맞아 8000여 회원사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명실상부한 이익단체로 자리매김해주길 바랍니다.

새로운 집행부에서 추진했으면 하는 사업이나 풀어야 할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과거나 현재나 업계의 숙원은 업역 확보입니다. 기계설비 전문건설업체로서 권익을 지켜야 하는 과제도 11대 집행부에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실현 가능성을 놓고 본다면 잘못된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알면서도 외면해야만 했던 권리 등을 발굴하고 개선해 기계설비업체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기계설비법 시대가 열렸습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계설비산업이 흐름에 발맞춰 건설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견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기계설비법은 업계의 소망이었습니다. 법이 ‘유지관리업법’으로 변질되지 않고 업계가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또 건설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원재재를 수입해 가공해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세태가 변하면서 편한 일만 찾는 경향이 짙어지고 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보다도 낮은 생산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밝은 미래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대한기계설비산업연구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산업의 중장기 발전 방안을 제시해 정부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하고, 젊은 근로자 현장 유입방안 등 업계 애로사항에 대한 해법 연구로 막힌 속을 뚫어 주는 소화제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회장 재임시절 추진했던 사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가지를 꼽는다면.

- 앞서 언급한 ‘겸업 제한 4년 유예’와 더불어 연대보증제 폐지 시점을 2년간 미룬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은 출범 초기로 재정 기반이 취약한 상태여서 연대보증제를 폐지할 경우 조합은 물론 이를 이용하는 조합원사들의 경영도 함께 위태로워진다는 논리로 정부를 설득했습니다. 당초 1년 유예에서 1년을 추가 연장해 총 2년간 유예받아 300억원의 손실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뒀습니다. 

끝으로 50만 기계설비인과 독자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으시다면.

- 과욕은 절대 금물입니다.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과거보다 기계설비업체의 매출이 크게 신장됐습니다만 매출 위주의 기업 경영에 집중하기보다는 시공 품질로 시장에서 신용을 쌓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박종학 고문은]

- 서울공업고등학교, 한양대 공과대학 졸업, 서강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 1971년 주식회사 동산테크 설립 이후 대한설비건설협회 서울시회 초대감사, 서울시회장을 거쳐 2005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대한설비건설협회 회장·건설단체총연합회 감사 역임

- 감사원장 표창, 은탑산업훈장, 건설산업발전공로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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