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거래 유보금 설정 응답 비율 44%에도 내부고발에만 의존

최근 건설경기 침체의 여파로 하도급대금 일부의 지급을 미루는 유보금을 늘고 있다고 전문건설업계를 중심으로 고충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허울뿐인 유보금 실태조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하도급업체의 불만을 사고 있다.

지난 20일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조사과에 따르면, ‘2024년 주요 업무추진계획’으로 발표했던 ‘유보금 불공정 관행 중점 점검’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확인됐다.

당초 공정위는 건설업 등 경기 위축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업종을 중심으로 보호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하며, 그 일환으로 원·하청 사업자간 불합리한 유보금 설정으로 대금을 미지급하는 불공정 관행을 중점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하도급거래에서 유보금 설정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4.0%로 조사됐다. 건설하도급 분야에서 유보금 설정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또 작년 12월 대한전문건설협회가 한기정 공정위원장을 초청해 가진 간담회에서도 ‘건설하도급 분야의 유보금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이를 계기로 공정위가 올해 주요 업무추진계획에 유보금 중점조사를 포함시켰다.

문제는 공정위가 전문건설협회에게 유보금 현장 리스트 제출이 있어야 조사를 나갈 수 있다며 수동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직적 거래 구조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청사업자의 내부고발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공정위 하도급조사과 관계자는 “지난해 전문협회와의 간담회를 통해 건설현장의 유보금 문제를 살펴보는 계기가 마련됐다”라며 “전문협회 측에 유보금이 설정된 현장 리스트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제출받지 못해 현장 조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 조사를 진행하더라도 공정위 시정조치를 받은 원청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사건 자체가 장기화될 수 있어 조사 결과를 공표할 계획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종합업체들이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다 유보금을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며 “하청 입장에서 받아야 할 대금을 제 때 달라는 말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현장에 유보금이 있다’고 조사해 달라고 신고하는 것은 거래관계를 끊겠다는 신호나 다름없는데 어느 누가 자발적으로 나서겠냐”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공정위측은 하도급대금 유보금 실태를 전수조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도급조사과 관계자는 “과에 배정된 인원이 수명에 불과해 현실적으로 이 인력을 가지고 유보금 관행을 살펴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유보금이 설정된 현장 리스트는 제출하지 못했지만, 유보금과 관련된 수급사업자 명단은 공정위 측에 전달했다”며 “만약 현장 리스트도 제출해야한다면 내부 검토를 통해 유보금 관련 실태조사를 다시 진행해 제출하는 방안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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