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설비 교체 쉬운 '100년 주택' 차세대 먹거리

기둥식구조 보급 활성화 시급
새로운 유지관리시장 떠올라

장수명주택에 적용되는 핵심 기술. [국토교통부 제공]
장수명주택에 적용되는 핵심 기술. [국토교통부 제공]

[기계설비신문 김주영 기자]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해 연일 고강도 대책을 쏟아 내고 있다. ‘재건축이 곧 돈 버는 지름길’ ‘새 것이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소비자 인식과 ‘수주가 곧 수익’인 종합건설업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철근콘크리트의 수명이 최대 100년인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재건축 열풍은 자원 낭비다. 장수명주택 보급 활성화가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9월 세종에 장수명주택 실증단지 준공식을 개최했다. ‘최우수·우수’ 등급을 획득한 최초의 단지다. 장수명주택은 내구성, 가변성, 수리 용이성에 대해 성능을 확인해 장수명주택 성능등급 인증을 받은 주택으로, 100년 수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도를 도입한 지 4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수등급’ 이상을 획득한 공동주택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현재 10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을 건설할 경우, 의무적으로 일반등급을 취득하라고 명시했지만, 기존 방식대로 설계해도 무리 없이 ‘일반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에서 공동주택의 수명은 대체로 30년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배관설비 등 시설 노후화에 따른 생활 불편이 증가하는 시점과 맞아 떨어진다. 현재 건설되고 있는 거의 모든 공동주택은 설비가 구조체에 묻혀 있어서 재건축이 아니고선 교체가 불가능하다. 리모델링으로 교체할 수도 있지만 높은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익이 발생하는 재건축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자원을 낭비할 뿐 아니라 건설폐기물로 인한 환경문제 등 사회적 비용 지출까지 초래하고 있다.

노후화 1기 신도시, 설비 교체 희망
배관설비 노후화는 생활 여건을 저하하는 핵심 요인이다. 실제로 경기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기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등) 거주자의 약 76.0%가 아파트 성능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단열(28.5%) △환기·냉난방(19.6%) △배수(16.0%) 등에서 불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불만에도 생활 여건 개선은 녹록지 않다. 콘크리트 내 배관설비를 매설하는 벽식 구조에서는 노후 배관을 교체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칸막이벽이 공동주택의 하중을 지지하는 내력벽인 까닭에 구조 안전성 등을 담보해야 하는 어려움도 존재한다.
반면 기둥식 구조인 장수명주택은 공용 배관과 세대 전용배관을 각각 분리 설치하고, 구조체에 배관설비를 매설하지 않아 교체와 수리가 용이한 장점이 있다. 여기에 구조체 손상이 없는 범위에서 평면 변경도 가능하다. 짧은 공동주택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해법인 동시에 기계설비산업에서는 새로운 유지관리시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주택 수명 128년 ‘최고’
한국의 주택 수명은 30년에 불과하다. 재건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배관 설비’ 등을 교체할 수 없는 내력벽 건설방식에 있다. 철근콘크리트 수명보다 짧은 배관 수명으로 인해 구조체가 문제없어도 철거가 되는 실정이다. 더욱이 노후 설비를 교체하는 비용과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비용이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재건축이 재산 가치를 높이기에 쉽다는 점에 비롯됐다. 
반면 해외의 주택 수명은 한국보다 최대 4배가량 길다.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따르면, 영국 주택의 평균 수명은 128년에 달한다. 미국은 72년, 프랑스는 80년, 이웃 국가인 일본도 54년이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배관 설비에서 발생한다. 이들 국가는 기둥식 구조에 설비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방식으로 지어지고 있다. 결국 100년을 쓸 수 있는 국내 공동주택은 20년에 불과한 배관 설비 수명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국내 최초의 아파트인 1932년 준공된 충정아파트는 다른 공동주택과는 다르게 장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결은 ‘장수명주택’ 시공방식인 기둥식 구조에 있다. 이처럼 주택 수명을 늘리기에는 기둥식이 유리하다.

장수명주택, 실현 위해 기둥식 구조 확산 필요
장수명주택 활성화를 위해서는 배관 설비를 매립하지 않는 기둥식 구조를 채택하는 건설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이후 바닥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설비의 유지보수를 편리하게 만들 시스템도 갖춰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바닥과 천장을 이중구조로 만들어 그 사이에 설비가 지나다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기둥식 구조로 공동주택을 건설하면 공간의 가변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벽체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어 목적에 따라 가구 내부를 꾸밀 수 있다.

‘개발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도 장수명주택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행 재개발, 재건축은 최저 입찰로 싼 가격에 지어서 개발이익을 얻는 사업 방식으로, 초기 비용이 더 드는 기둥식 구조의 장수명 주택을 짓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 공공분야가 장수명주택 건설을 견인하고 있는 모양새다. 장수명주택에 가장 적극적인 기관은 서울주택도시공사다. 서울특별시가 2011년 1월부터 기둥식구조로 지을 경우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는 덕분이다. 2018년 기준으로 53개 단지, 약 4만2000호가 배관설비 교체가 용이한 기둥식구조로 건설됐다. 

서울주택도시공사 관계자는 “아직 장수명주택에서 배관 노후화가 관측되지 않아 설비 교체 계획 등은 수립되지 않았다”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필요한 시점에 교체를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민간 분야에서도 서서히 장수명주택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민간에서는 100년 주택을 추구하며 현대건설이 반포 주공 1단지에 장수명주택으로 시공할 계획이다. 이밖에 힐스테이트·푸르지오 고덕, 신반포 자이, 반포 푸르지오 써밋 등 강남권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비용문제, LCC 관점서 유리
그러나 그간 장수명주택의 걸림돌로 작용하던 비용 문제도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국토부 실증사업에서 확인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공사 비용이 비장수명주택 대비 3~6%수준에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폭의 초기 건설비용이 증가함에도 100년 생애주기비용(LCC)은 11~18% 절약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국토부의 장수명주택과 비장수명주택의 건설 및 유지보수비용 추계를 보면, 40년마다 재건축하는 것을 가정한 비장수명주택의 총 비용은 ㎡당 918만원이었다. 리모델링이 가능한 장수명주택의 경우, 일반등급은 812만원(11.54%), 양호등급은 747만원(18.59%), 최우수등급은 755만원(17.7%)로 나타났다. 

여기에 철거와 재건축 횟수를 줄임으로써 양호등급 기준 온실가스는 비장수명주택 대비 17%, 건설 폐기물은 85%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구 증가 둔화 등으로 중장기적으로 주택 수요가 줄어들면 노후화된 기존 주택들이 장기간 사용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앞으로 유지보수나 수리가 용이한 장수명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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