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人文)스토리 '마음대로'] 30-예감을 확신하는 마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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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人文)스토리 '마음대로'] 30-예감을 확신하는 마음 이야기
  • 기계설비신문
  • 승인 2021.0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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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리는 불행은 피해도 스스로 만드는 불행은 피할 수 없다.
천작알유가위 자작알부가환 (天作嶭猶可違 自作嶭不可逭) -서경(書經)
이소영<br>문화로드 대표<br>교육학박사<br>
이소영
문화로드 대표
교육학박사

천재이든 스스로 만든 인재이든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으레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다. 사실을 이해하는 것보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확신하고 스스로를 변명하고 정당화한다. 이렇게 자기를 기만하면 불행한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자신에게 없는 문제는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만든 것이 자신이라면, 문제를 줄이고 없앨 수 있는 것도 당연히 자기 자신이다. 불행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무얼 잘못한 것일까 하고 자기의 잘못을 응시해야 한다. 자신에게 생긴 문제는 자신의 책임이다.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기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자기 응시가 있어야 불행을 피할 수 있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원제: The Sense of an Ending)’라는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구성자체가 치밀하게 계획되고 철저히 계산되어 있어서 모든 문장들이 퍼즐 조각처럼 역할을 가지고 있다. 1부는 주인공 토니 웹스터의 친구들과 학창시절, 일 년쯤 사귄 베로니카에 대한 이야기이고, 2부는 60대인 토니가 오백 파운드와 두 개의 문서를 베로니카의 엄마인 사라에게 상속받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그에 얽힌 사실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토니는 40년 전 베로니카의 집을 방문했던 굴욕적인 주말에 대해 시시콜콜 기억해내려 한다. ‘기억하다’는 먼저 기억을 만들어 저장하고 다시 꺼내야 가능하다. 토니가 만든 기억은 굴욕이라는 낱말로 포장되어 있고, 그때 만난 베로니카의 가족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다. 베로니카의 아버지와 오빠가 자신을 무시하고 오만하게 대했으며, 베로니카 또한 이를 방조했다고 기억한다. 다만 베로니카의 엄마인 사라만이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고 기억해낸다. 그는 이로 인해 베로니카와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토니의 기억은 진실이기보다 베로니카에 대한 불만과 단편적인 모습에 기인한 확신이다.

이후, 친구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가 사귄다는 것을 알고 토니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토니가 기억하는 편지의 내용은 실제와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 토니는 자신이 보냈다는 악담과 저주로 가득한 40년 전의 편지를 읽고 놀란다. 혈기왕성한 20대여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을 삭제하고 편지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이유가 자기보존 본능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한글판 소설의 제목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인데 반어적 표현인지 토니의 예감은 모두 어긋난다. 1부에서 토니가 사건들을 예감하고 확신하며 들려준 이야기와는 너무나 다른 내용들이 2부에서 밝혀지면서 소설의 마지막은 거대한 혼란으로 끝난다. 40년이 흐른 후에 토니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저주가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혼란스런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을 읽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기고,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소설을 읽게 된다. 베로니카의 가족은 실제 어떤 사람들인지, 베로니카와 사귀던 에이드리언이 그녀의 엄마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소설 속에는 정보가 부족해 알 수 없다. 독자는 토니가 무의식적으로 흐린 기억과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하고 일부는 삭제한 내용만 읽게 된다. 토니의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정보만으로는 비극적 결과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것, 그의 아들이 장애인이라는 결과는 자명하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원인은? 악담과 저주로 가득했던 토니의 편지가 여러 원인 중에 하나일 수 있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소설을 읽는 독자마다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더해서 결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릴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렸던 모든 판단의 화살이 스스로에게로 향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잘못을 응시하는 노력을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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