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온수보일러의 탄생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운영되던 보일러 관련 제조업도 우리나라 사람이 공장과 시설을 그대로 인수하거나 불하받아 일본인들이 하던 방식대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나 6.25전쟁 기간 중 대부분이 파괴됐다.

6.25전쟁 기간 중 1951년 부산으로 피난민이 집결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주택부족과 가정연료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수타식 구멍탄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무연탄으로의 연료정책과 전력생산계획 촉진 주택건설계획에 따라 건설된 서울 마포아파트는 엘리베이터, 중앙난방시스템과 수세식 화장실 등을 갖춘 1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로 계획됐다. 하지만 당시 여론과 경제성을 고려해 개별난방시스템의 6층 계단식 아파트로 변경됐다.

결국 이 아파트에는 연탄 온수보일러를 설치하게 됐으며, 이 연탄 온수보일러 업체 선정을 위해 그 당시 보일러 경진대회를 실시했는데, 현재 귀뚜라미보일러 전신인 신생보일러가 선정됐다.

연탄 온수보일러가 아파트 난방에 적용된 것은 서울 마포아파트가 처음이기 때문에 순환펌프가 없어서 자연대류방식으로 난방 주공급 온수배관을 천장까지 올려 각 방의 방열기에 하향 공급하고 식은 물을 연탄 온수보일러로 환수해 재가열한 다음에 온수를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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