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법고창신 (法故創新) -박지원(朴趾源)의 법고창신(法故創新)론

 

이소영<br>문화로드 대표<br>교육학박사<br>
이소영
문화로드 대표
교육학박사

법고(法故)는 옛 것을 본받는 것이고, 창신(創新)은 옛 것을 버리고 새로이 창제하는 것이다.

옛 것을 본받으면서 한편으로 버리라고 하는 말이어서 얼핏 모순되게 들린다. 옛 것만 고집하면 그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것만 추구하면 기본에서 벗어나기 쉽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지난 것에서 일정한 법칙을 얻어내 변통할 줄을 알고 새로이 창제하면서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법고와 창신을 병행하면 새롭고 훌륭한 글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웹소설을 즐겨 읽고 있다. 웹소설은 1회당 A4 5장 내외 분량으로 5분 정도가 소요된다. 핸드폰을 통해 읽게 되므로 문장이 짧고 한 화면에 3-4개의 단락이 제공되어있다.

웹소설에는 주인공이 자신이 읽었던 소설이나 드라마 혹은 게임 등의 다양한 콘텐츠 ‘속’의 인물이 되어 기존 이야기인 ‘원작’을 재해석하는 ‘책빙의물’이 많다.

키아르네의 〈신데렐라를 곱게 키웠습니다〉라는 웹소설은 주인공이 ‘신데렐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을 다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옛 고전동화 신데렐라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착용(법고)하고 있어서 독자는 작품에 빠르게 빠져들게 된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계모에게 구박받는다’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제목은 ‘곱게 키웠다’라며 원작의 내용을 비틀어 시선을 끈다.

주인공은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 ‘계모’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원작의 주인공 신데렐라가 아니라 악역인 계모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참 재미있다.

같은 등장인물과 같은 구조의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변화를 위해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작가는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신데렐라를 읽었던 많은 독자들은 신데렐라를 구박하는 계모에게 분노하며 그녀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한다. 원래 이야기에서 옛 것을 버리고 새로이(창신) 바꿔야 하는 인물은 계모이다.

원작에 나타나 있는 ‘여성귀족은 노동하지 않는다, 여성귀족은 남편이나 아들이 없을 때 자립할 수 없다, 착하고 예쁜 여자(신데렐라)는 언제나 보상을 받겠지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욕심스러운 것이다’ 등의 편견을 바꿀 수 있는 키는 계모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거나 행동할 수 있다. 사람은 생각한대로 행동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안타까워했던 일이라면 그 대답은 이미 독자들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결정할 때까지는 생각이 필요하다.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 들어가 계모가 된 주인공은 원작에 나오는 편견과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딸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친딸과 신데렐라를 차별 없이 곱게 키우기로 결정한다.

소설은 자매들 사이의 연대와 애정, 그리고 성장을 다루며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대모보다 불행한 이들을 도울 사회문화적 구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처럼 웹소설은 유사한 이야기 구조의 반복으로 다음 이야기 전개를 예측 가능하게 하고, 유사한 장면과 이야기 구조의 반복으로 작가의 창작 속도를 높이고 독자의 읽기 속도도 빠르게 한다. 웹소설은 순수문학과는 달리 재미를 추구한다. 재미는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새로움이 약간 추가될 때 최고조에 달한다고 한다.

260여 년 전 박지원이 고전의 구속에서 해방돼 객관적 사실묘사를 위한 소재와 문체의 자유를 주장했듯이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새로운 형식인 웹소설의 재미에 다가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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