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노하우 활용할 ‘549조 시장’이 열린다

정부의 탈원전정책으로 신규 원전사업 추진이 난항을 겪으면서, 원자력산업계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 세계 선두권을 향해 질주해 가던 우리나라 원전 기술력과 노하우가 사장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정부가 당근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원전 해체산업의 육성’이다.

정부는 지난 2019년 4월 17일,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의 성장이 예상됨에 따라 우리나라 원전산업계의 미래먹기리로 원전해체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정부는 올 연말 경 발표될 예정인 제9차 국가전력기본계획에 현재 건설 중단 상태인 신한울원전 3·4호기를 제외시키고, 가동 중인 원전 24기 중 11기를 2034년까지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부의 구상대로 탈원전정책을 이어가면서도, 원전산업계가 받을 충격파를 줄이기 위해 원전해체 산업을 육성하는 수순을 밟아 가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편집자 주〉

국내 처음으로 폐기가 결정된 고리1호기에 대한 원전해체사업은 올해 말 한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하게 될 최종해체계획서가 승인되는 대로 본격 사업 착수에 들어갈 전망이다.
국내 처음으로 폐기가 결정된 고리1호기에 대한 원전해체사업은 올해 말 한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하게 될 최종해체계획서가 승인되는 대로 본격 사업 착수에 들어갈 전망이다.

원전해체시장 진입장벽을 넘어라
정부는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이 본격화되는 시기를 2020년대 중반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총 123조원, 2031~2050년까지 20년 동안 204조원, 그 이후에 약 222조원 등 총 549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또 우리나라 원전해체 시장규모는 약 22조5000억원으로 추산했으며, 2030년 이전까지 국내 원전 12기의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만큼, 시장 확대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지난 2017년 고리1호기의 폐기가 확정된 데 이어, 지난해 12월 월성원전 1호기에 대한 영구정지 결정이 내려지면서 원전해체 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체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이어서, 우리나라의 원전해체 기술력이나 인력분포는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하고, 생태계 기반도 미흡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글로벌 원전해체시장 역시 초기에 원전을 도입했던 미국이나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형성될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기존 원전시장과 마찬가지로 원전해체 시장 역시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의 참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에서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21기. 이 중 상업용 원전은 8기는 모두 미국에 있다. 또 영구 정지된 원전의 대부분(약73%)이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초기 원전도입국 중심으로 분포돼 있다. 

이 때문에 원전해체 시장에는 초기 원전도입 국가를 중심으로 10여개의 해체 종합기업과 다수의 전문특화 기업들이 활동 중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원전건설과 정비, 폐기물 처리 등의 기존 원자력 분야 경쟁력을 토대로 해체 분야로 사업범위를 확장해 온 경우다.

특히 산업 특성 상 그 위험성으로 인해, 그동안 해체 경험을 축적하면서 검증된 기업 외에는 시장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특단의 육성정책이 필요한 시기다.

해체기술역량·인력 턱없이 부족
국내 원전해체산업은 90년대 후반 연구로 해체 등을 통해 소규모 시장이 형성됐으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이후 해체준비 과정에서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한수원 등 원전 관련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리 1호기 해체사업에 대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으며, 중소기업은 방사선 관리 등 특정 분야 중심으로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의 실제 해체 역량은 검증되지 못했으며, 특히 아직까지 사업 물량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선제적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정량적 기술격차는 선진국에 비해 82% 수준으로 평가받았지만, 아직 상업용 원전 해체경험이 없어 실제 격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력 또한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정부에 따르면, 2030년에는 원전해체 분야에 2600여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공공기관 전담인력은 250명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진국 중심 해체산업, 선제적 투자로 간극 줄여가야
국내 기술력 선진국 대비 82%…실제 역량차는 더 커
​​​​​​​고리1호기, 다양한 해체기술 습득·인력양성 기회로 

글로벌 시장 ‘Top 5’ 진입 목표
이에 정부는 ‘원전해체산업 육성전략’을 수립, 초기 일감창출을 위한 선제적 투자와 핵심인프라 등 전문기업 육성기반을 구축함으로써 미래 글로벌 원전해체시장 Top 5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2035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2022년까지는 초기시장을 창출하고, 산업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또 2023년부터 2030년까지는 원전해체 전문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2031년 이후부터는 국내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정부의 육성전략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초기시장을 창출하고 산업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국내 첫 폐기 원전인 고리1호기의 해체사업을 착수하기 전이라도 조기에 일감을 창출하고, 시장활성화를 위한 선제적 투자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의 일환으로 해체 대상 원전의 준비시설 등은 조기발주키로 했다. 또 안전한 폐기물 관리를 위한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원전해체산업 육성과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핵심인프라로 지난 8월 ‘원전해체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2단계로 원전해체 전문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기존 원전기업의 해체역량을 높이기 위해 인력, 금융, 생태계 등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게 된다.

또 원전해체연구소를 통해 해체 전문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서는 등 산업 생태계 기반을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기존 원전산업 종사자에 대한 인력전환, 신규 전문인력 1300명 등 전문인력 양성에 주력하고, 원전기업의 사업전환을 돕기위한 500억원 규모의 펀드도 조성키로 했다.

3단계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하게 된다. 고리 1호기 해체실적을 축적함으로써 해외시장 진출기회를 확대하고, 원전선진국들과의 정보·인력, 공동연구 등의 협력관계를 구축해 해외진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화 기술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해야
현 정부의 탈원전정책이 지속될 지 여부와는 별개로 ‘원전해체시장’이 플랜트 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첫 해체원전이 될 고리1호기의 해체 예상비용은 약 81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해체작업에 60%,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40% 가량의 비용이 쓰일 전망이다.

따라서 고리1호기의 해체비용은 총 5000억원 정도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기에 2030년대 중반이면 원전 10기에 대한 동시 해체가 진행돼 국내 시장규모도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다만 세계 원전해체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선진국 대비 기술우위에 설 수 있는 특화된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자력분야 전문가인 중앙대 정동욱 교수는 “국내 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기술집약적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해체공정관리기술은 해체 준비 때부터 활용하기 때문에 해체사업에 조기 참여가 가능한 만큼, 민간기업들이 일부라도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자력 전문가는 “원전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해체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인트벤처’방식으로 공사가 발주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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