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사에 요즘 젊은 세대들이 즐겨 표현하는 ‘레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1975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중동 진출 일화다. 당시 석유 파동으로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달러가 넘치던 중동 국가들이 앞다퉈 사회 인프라 건설에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정부가 현장조사차 공무원을 파견했지만 이들은 일제히 중동 진출에 난색을 표했다. 낮에는 너무 뜨겁고 물도 구하기 어려워 건설 작업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정주영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정 명예회장은 중동이 건설 공사하기에 최적이란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우기가 없어 1년 내내 건설공사가 가능하고, 모래와 자갈 등 재료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 건설 자재 조달이 쉽다는 판단이었다. 뜨거운 낮에 잠을 자고 시원한 밤에 일하면 된다는 묘안도 내놨다.

현대건설은 1976년 ‘20세기 최대 공사’로 불리던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프로젝트를 따냈다. 당시 수주 금액 9억3000만 달러는 연간 우리 정부 총 예산의 25% 규모였다.

하지만 건설사들의 현주소는 사뭇 다르다. 해외서 돈 잘 벌던 좋은 시절이 다 갔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실적은 13년만에 최저치로 고꾸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더 참담하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해외 현장이 셧다운됐다.

다시 격동의 시대다. 단순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하던 시대에서 디지털경제로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디지털이 결합된 SOC 도입,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시티가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정부도 지난 7월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에 SOC 디지털화, 스마트 그린 산업단지 조성 등의 스마트 인프라 구축 전략을 포함했다.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터키 등 4개국에 스마트시티 협력센터를 설치하고 관련 해외 수주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시작했다.

반면 국내 건설사들의 몸은 예상보다 굼뜬 모습이다.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접수한 세종 스마트시티 사업자 선정 입찰에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한양 세 곳만 참여했다. 전자통신, 자동차업계가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과는 대조된다.

건설사들이 변화한 경영환경에 대한 준비와 계획이 부족하단 말이 나온다. 전통적 도시 인프라 구축에 익숙하던 건설사들에게 스마트시티는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이다. 스마트시티의 개념과 계획이 모호한 상태에서 당장 기대효과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ICT 기술에 밀려 건설사들은 단순 아파트 시공 등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도 있다.

다만 경험 없다고 도전하지 않으면 전세계가 마주할 새로운 ‘붐’에 합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임자, 해봤어?” 정주영 명예회장의 호탕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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