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날 헛되이 보내지 마라. 백일막허송(白日莫虛送) - 도연명(陶淵明) 사계(四季)

이소영
문화로드 대표
교육학박사

백일은 구름이 없이 태양이 쨍쨍하게 비치는 날이고, 허송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여기서 좋은 날이란 젊은 시절일 수도 있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생기가 넘치는 전성기일 수도 있다. 

인생이란 연습이 있을 수 없고, 소설에서처럼 지나간 날을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단 하루라도 불성실하게 살아서는 안 되고, 특히 가장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시기인 젊었을 때 부지런히 학문할 것을 권하는 글이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 les Baudelaire)는 ‘여행’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진정한 여행자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 떠나는 사람들, 마음도 가볍게, 풍선처럼 / 주어진 숙명을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 까닭도 모르는 채 늘 “가자!”하고 외친다.’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시에서처럼 그냥 떠나기 위해 ‘가자’를 외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의 어원은 고통이란 ‘travail’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19세기 이전의 여행은 많은 시간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도저히 깨닫기 어려운 걸 알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의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보랏빛 바다 위를 비추는 태양의 찬란함이 / 저무는 태양에 비친 도시의 찬란함이 / 우리 가슴속에 불안한 정열을 불붙여 / 매혹적인 석양빛 하늘 속에 잠겨들고 싶었다.’

보들레르의 ‘여행‘이란 시를 계속 읽다보면 빨리 바다로 달려가 태양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아쉬운 마음에 지난 여행들을 추억하며 사진을 들쳐본다. 무슨 목적을 위해 여행을 갔던 건 아니지만 사진이 엄청 많다. 어디 어디 갔다 왔다는 걸 기록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바쁘게 가능한 한 많은 곳을 구경하고 사진에 담았다. 

그런데 사진을 통해 보는 여행지는 피상적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뿐, 어떤 향기도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여행은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떠나 그동안 숨겨두었던 또는 자신조차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진의 어디에도 새로운 나는 없다. 

여행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도 있다. 보를레르도 ‘떠나야 할까? 남아야 할까? 남을 수 있으면 남아라.’라고 시의 뒷부분에 쓰고 있다.

물론 시인이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여행에서 얻어낸 씁쓸한 깨우침! / 단조롭고 작은 이 세계는 오늘도 / 어제도, 내일도, 그리고 언제나 우리 모습을 비춰 보인다 / 권태의 사막 속의 공포의 오아시스를!’

여행을 떠나려는 마음은 현실의 나를 외면한다. 앞으로 올 날들에 비해 가장 젊은 지금 이 시간을 허송하게 한다. 여행을 떠나려는 자신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여행지의 낯선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럽고 천진난만하며 사뭇 진지하게 매사를 즐기고 걱정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잘 참아낸다. 나쁜 일이 생겨도 받아들이고 좋은 일이 지나쳐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자. 여행으로 채우려던 비어있는 넓은 여백에 음악과 그림과 책들을 담아본다.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이 시기의 가득한 외로움과 균형을 이루며 여행을 떠나려는 마음의 갈증이 차츰 해소되는 듯하다.  

‘제아무리 호화스런 도시도, 아무리 웅대한 풍경도 / 우연이 구름과 함께 만들어내는 / 저 신비한 매력에는 미치지 못했고’ 

고개를 들어 보들레르의 시구에 등장하는 신비한 매력을 지닌 구름을 바라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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