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주되 갖지 않고 도와주되 바라지 않으며 길러주되 이래저래 않는다.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 노자(老子)

이소영
문화로드 대표
교육학박사

자연의 생물들은 낳았어도 소유하지 않고, 돌보았지만 의지하지 않고, 키우면서도 지배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사람만이 빈곳을 채우지 못해 안달하듯 자식을 자기 것이라 자랑하고 기대하며 자기식대로 키우려한다. 노자는 사람들에게 자연이 하듯이 낳고 돌보되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말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재택학업이 늘어난 요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이란 결혼이나 혈연 등으로 맺어진 집단이다. 보통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로 함께 먹고 자면서 행복과 불행의 경험을 공유하고 유사한 유전자를 가지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때문에 자연스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다 아는 것처럼  당연시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제목의 최근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는 가족 같은 타인과, 타인 같은 가족의 오해와 이해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큰딸은 결혼을 했고 둘째 딸은 독립해서 나가 살고 막내인 아들만 아버지, 엄마와 같이 살고 있다. 엄마가 졸혼이라는 말을 꺼낼 때까지만 해도 그런저런 가족이야기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매 회마다 가족끼리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이 까도까도 또 나오는 양파 껍질처럼 끝나지 않고 밝혀지면서 놀라움을 선사한다. 

얼마나 서로를 몰랐으면 저럴까 싶다가도 그래 그냥 안다고 지나쳐 버리는 게 가족이지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사실 사람들은 지구 내부보다 태양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가족보다 남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같은 사건을 경험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각각이어서 기억 또한 다르다. 그럼에도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드라마에서 아버지는 아내가 큰딸의 친부인 옛 연인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아내에게 사실여부를 물어보거나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책임감을 가지고 온갖 고생을 감수하면서 애써 일하는 것이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만 아내를 짝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늘 화가 나있고 가끔씩 참지 못하고 폭발한다. 

엄마와 아이들은 화가 난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어떤 반대의 의사도 표시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화난 상태는 가족들의 억눌린 침묵을 조장하는 도구적 감정이 된다. 
엄마는 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리고 있다고 의심한다. 

엄마는 남편에게 사실여부를 물어보거나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이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임신한 자신과 결혼해 준 남편에게 고마워하고 사랑도 하지만 오랫동안의 불신과 불만은 졸혼을 결심하게 한다. 

가족끼리 요구되는 인내와 희생과 무조건의 용서는 사랑을 의무적으로 바꾼다.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상대방을 관찰하지 않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하지도 않는다.

드라마 속 아버지와 엄마의 배려하는 마음은 진정한 배려였을까?

배려는 나와 상대의 공동의 시점에서 염려하여 돌보고 보살피는 마음 씀이어야 한다. 

드라마 속의 아버지와 엄마는 자신의 시점으로만 상대를 고려해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애를 쓴다. 상대의 시점이 없는 노력은 오히려 돌보지 않거나 수수방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족이 서로에게 정말 원하는 것은 상호간의 정서적 유대감일 것이다. 세상에 나가 혼자서 우뚝 설 수 있는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따뜻한 지지대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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