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이 싫어 처음부터 공공부분만 했어요. 가끔 턴키 프로젝트로 발주가 되면 종합건설사와 일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 그들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나서 연락이 와도 가능한 한 거절하곤 합니다.”

얼마 전 인터뷰를 진행했던 중소 전문업체 A사 대표의 말이다.

하도급 비중이 높은 중소 전문업체에서 A사 대표와 같은 반응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도급이 싫을까? 원도급자가 되면 책임져야 할 영역도 많아지고, 갖춰야 할 자격요건이 까다로워 비용적인 부담도 적지 않을 텐데 말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을’ 취급 받는 것이 싫어서다.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취재하면서 확보하게 된 각종 사례에서 나타난 발주처와 원도급자의 갑질은 참으로 천태만상이었다.

계약된 공사 외에 추가공사를 지시하고도 대금 지급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원도급자가 처리하도록 법으로 명시된 사항을 특약이라는 이름으로 계약서에 반영하는 것은 오히려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다.

구두 지시는 예삿일이지만, 작업 지시에 대한 서면 근거가 없다며 대금 지급을 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현장의 특성 상 당초 설계에 없던 내용을 지시할 때에는 관행처럼 이뤄지는 행태다. 용역이나 물품이 제공되면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상거래 원칙이 여기서는 지켜지지 않아도 되나보다.

거래관계를 유지하기위해 때로는 인간적인 모멸감도 감수해야 한다.

왜? 그들이 바로 나에게 일거리를 주는 ‘갑님’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도급법이나 건산법, 공정위의 부당특약지침 등 각종 법제도 장치가 과거 팽배했던 ‘갑을 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긴 하다. 적어도 드러나 있는 부분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불공정행위를 당한 업체들이 제보를 꺼리는 많은 이유가 갑님과의 거래중단이 우려 돼서라면 과연 갑을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이 없어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관행이 문화로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하도급이 싫어지는 것이다. 공정거래는 법제도를 통해 기반을 닦고, 혁신적인 신문화 창달을 통해 완성돼야 한다. 문화의 변화는 다른 누가 아닌 건설인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책무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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