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온도·습도 속 청정공기 상태 유지가 관건
공간 용도 따라 설비 운영조건 달라…에너지 소비도 고려사항
미세먼지 등 유해물질 차단·감염병 확산 방지 위해 환기 필수

미세먼지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실내 공기질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쾌적한 실내 공기질을 유지하기 위한 공기조화설비와 같은 기계설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공기조화설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편집자 주]

1990년에 개봉한 토탈리콜이라는 영화가 있다. 반군이 정부군에 맞서고 있는 지구의 식민행성 화성에 주인공인 아놀드가 방문하는데, 공기를 독점 공급하는 기업이 식민지 하층민에게는 좋은 공기를 제공하지 않아 시민들이 각종 유전병과 기형 등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국 주인공의 활약으로 외계인이 만든 ‘공기 제조 장치’를 가동시켜 신선한 공기를 화성에 공급해 식민지 시민들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30년 전 영화적 상상력의 소재로 ‘질 나쁜 공기’가 등장했을 때 영화니까 저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가능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미세먼지 때문에 깨끗한 공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코로나19로 인해 유해물질의 공기 전파 가능성을 두려워하게 됐다. 과거에는 건물 외부의 대기 환경이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내에서 냄새가 나거나 답답하면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였지만, 이제는 필자조차도 창문을 열기 전에 과연 자연환기가 나은지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 같은 공기조화 기기를 가동시키는 기계환기가 나은지를 먼저 따져 보게 된다. 이 때 내가 원하는 공기 상태를 내가 원하는 기간만큼 유지시키기 위해 어떤 환기 방식이 더 유리한지가 그 판단의 기준이 된다.

공기조화설비란 시설물 내부의 온도, 습도, 청정도, 기류 등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된 기계·기구·배관 및 그 밖에 성능을 유지하기 위한 설비를 말한다. 이 정의만 보면 공기조화설비는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가 실내로 유입되게 하는 자연환기의 기능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공기를 공급받는 공간의 용도에 따라 원하는 공기 상태와 지속기간, 그리고 이를 유지하는 비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화상 환자 병실이나 반도체 FAB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은 무균, 무오염물질, 일정한 온도와 습도 조건을 가진 공기환경이 일 년 내내 유지되어야 하므로 항온항습기와 공기청정 필터 설치가 필수적이다. 습도, 온도에 민감한 전산실, 실험실, 문서고, 미술품 전시장, 박물관등과 같은 장소에는 무균 및 무오염물질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한 항온항습 조건이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용도의 공간은 자연환기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환기는 일정한 조건의 공기환경을 오랜 기간 동안 지속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항온항습 및 공기청정 설비는 기기 자체가 비쌀뿐더러 설치비용도 높고, 인위적으로 창을 열수 없으며 침입외기도 없는 공간에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용도로 사용되는 일부 공간에만 따로 설치된다. 또한 연중 상시로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도 상당할 수 밖에 없다.

사무실이나 공연장 같이 조금 덜 민감한 공간에는 적정한 수준의 청정도, 온도, 습도, 공기흐름을 조성해 주는 공기조화설비를 설치하고 때때로 자연환기도 병행한다. 강당이나 극장 같은 대공간은 한꺼번에 많은 공기를 처리하고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공기조화기(Air Handling Unit, AHU)를 설치한다. 이때 100% 신선외기를 도입하면 만약 연중 내내 정밀한 항온항습까지는 아니더라도 100% 신선외기가 필요한 공간에는 외기조화기 (Outdoor Air Conditioner, Outdoor Air Handler)를 설치하기도 한다.

 원하는 온도·습도·청정도로 공기를 조성하는데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실내 공기 일부를 신선외기와 적절히 섞어 공급한다. 대량의 공기가 공기조화기에서 처리되고 덕트를 통해 각 실로 공급되기 때문에 중앙공조 방식이라 불린다. 천장 내 공간에 설치된 덕트가 실과 실을 누비면서 공기를 공급하는 천장 공조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바닥에서 공기를 공급하거나(바닥공조) 재실자 가까이에 설치된 별도의 공기터미널에서 공기를 공급할 수도 있는데(치환공조) 이는 천장공조 방식보다 적은 풍량과 느린 유속의 신선한 공기를 재실자에게 직접 제공할 수 있고 전체 공간 내 공기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므로 열쾌적이 향상되고 에너지 수요량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개인 사무실이나 교실처럼 중소규모의 공간에는 FCU (Fan Coil Unit)나 EHP(Electric Heat Pump)처럼 실내공기를 계속 ‘재활용’하여 일정 온도를 맞춰주는 터미널을 설치하기도 한다. 공기조화기처럼 신선외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으므로, 자연환기와 병행하거나 외기전담장치 (Dedicated Outdoor Air System, DOAS), 전열교환기 같은 환기전용 장치를 따로 설치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외기전담장치의 국내 설치 사례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외기전담장치가 환기와 제습의 잠열부하를 따로 담당하고 복사패널이나 FCU가 (공기의 온도를 조절하는) 현열부하를 따로 담당하도록 구성한 사례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당히 일반적이다. 전열교환기는 겨울철에 외부로 배출되는 실내공기의 엔탈피를 내부로 도입되는 신선외기로 전달하거나 여름철에 내부로 도입되는 신선외기의 높은 엔탈피를 외부로 배출되는 실내공기로 전달하여, 신선외기의 온습도를 조절하는데 사용되는 에너지를 저감시켜 주는 열교환 장치이다. 의무설치 대상인 30세대 이상의 아파트뿐만 아니라 교실, 도서관, 탈의실, 지하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꾸준히 설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FCU나 EHP는 실내공기의 온도를 조절할 때 필요한 온열이나 냉열을 외부 기기로부터 물이나 냉매를 통해 전달받기 때문에 배관만 필요할 뿐 대용량 덕트나 A.D. (에어덕트), 공조실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가용공간이 넓어지고 층고를 줄일 수 있어 중소형 건물의 공기조화설비로 적합하다. 특히 EHP는 냉수 공급을 위한 냉동기, 온수 공급을 위한 보일러마저 필요하지 않고 유지보수도 용이하기 때문에 점점 더 확산되는 추세이다. 그러나 EHP는 전기로 가동되기 때문에 여름철 전력 피크를 유발할 수 있고 혹한기에는 난방 성능이 다소 저하될 수 있으므로 건물전체 보다는 필요한 공간 위주로 설치할 것을 권유한다.

요즘처럼 감염병이 창궐하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뉴노멀(New Normal)이 된 시기에는 아무래도 실내생활을 더 오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주 환기를 하지 않거나 실내 공기가 계속 혼합되도록 방치하여 폐쇄된 공기환경이 지속되면 감염 위험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창문을 열어 놓고 냉난방을 가동하자니 이만저만한 에너지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현 시점의 공기조화설비로는 이를 극복할 뾰족한 대책이 없지만 마스크처럼 개인별 공기환경을 조성해 주는 맞춤형 시스템이 조만간 출시되지 않을까 싶다.

마침 필자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서 칩거하던 중 공장들이 멈추어서 깨끗해진 하늘과 도심을 배회하는 야생동물들을 티비 화면으로 보게 되었다. 토탈리콜의 마지막에도 대기권 전체에 신선한 공기가 공급되어 지구만큼이나 아름다운 행성으로 바뀐 화성의 모습이 그려졌다. 결국 인류가 미세먼지 때문에 코로나19 때문에 고통을 받더라도 이는 자업자득일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예전처럼 살면 안 된다고 경고를 주었지만, 우리는 이를 얼마나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김선혜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공학, 건축기계설비공학과)

정리=김민지 기자

 

저작권자 © 기계설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