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 하면 반복되는 후진국형 ‘참사’

■ ‘우레탄 유증기·불꽃’ 원인 추정
■ 무리한 공기단축 정황도 포착
■ “안전관리자 본적 없다” 증언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이후 국화꽃이 놓여 있다. [연합]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이후 국화꽃이 놓여 있다. [연합]

고용노동부가 수차례 남이천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 대해 화재 위험성을 경고하고 개선을 요구했음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달 29일 발생한 화재사고로 38명(5월 6일 기준)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유해 위험 방지 계획서’를 마련토록 규정했지만, 현장에서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강제할 방법이 없어 사실상 ‘무대책’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해 또 한 번 아까운 인명만 잃었다. /편집자주

[기계설비신문 김주영 기자] 한익스프레스가 발주한 남이천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사진〉에서 지난달 29일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원청사인 (주)건우와 계약한 9개 전문건설업체 소속 근로자 78명 가운데 약 36%인 38명이 한순간에 생을 마감했다. 

이번 사고 원인으로는 △우레탄 폼에서 발생하는 유증기와 용접 작업 중 발생한 불꽃으로 인한 연쇄 폭발 △샌드위치 판넬 화재 확산과 이로 인한 유독가스 질식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40명이 사망한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참사와 동일한 원인으로 추정돼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소방당국은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당시에도 스티로폼과 우레탄 폼 단열재가 내장된 샌드위치 패널을 대형참사의 ‘주범’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번 사고 이후 노동계는 이천 냉동창고 참사 이후 재발방지 대책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았다고 성토하고 나섰다. 당시 참사를 일으킨 기업에 벌금 2000만원이 부과된 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나마 올 1월 시행된 개정 산업보건안전법이 사망사고에 대한 원청 과실이 인정될 경우, 처벌 수위를 기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7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로 상향했기에 과거보다는 강한 처벌이 예상된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 발생 직전에 지하 2층 화물용 승강기 설치 작업현장 부근 등 전반적으로 우레탄 폼에 발포제 등을 첨가하는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레탄 작업 시 화학반응으로 인해 유증기가 발생하는데, 마침 부근에서 승강기 설치 작업도 동시에 이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날도 단열을 위해 우레탄을 창고 벽면 등에 주입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현장 곳곳에 유증기가 퍼진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점화원(불티)에 의해 폭발이 발생, 화재가 시작된 것이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로 추정되는 사고 원인이다. 점화원은 승강기 설치 작업 과정에서 나온 불꽃일 수 있는 셈.

참고로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꽃작업이 원인이 된 화재는 매년 1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불꽃과 유증기가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진 이유는 ‘우레탄’에서 발생한 독성물질이 질식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레탄이 지속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원인은 ‘저렴한 가격’에 있다. 공사비 절감에 초점을 둔 건설사의 경우, 저렴한 건자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문제는 우레탄은 불에 약하고 화재시 독성물질을 순식간에 다량 배출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레탄 혼합 중 발생한 유증기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인가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화재 발생 직후 우레탄이 연소하면서 내뿜은 유독가스가 대형 인명피해를 야기했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더욱이 사고 현장에서 일반 우레탄이 사용됐는지, 난연 우레탄이 사용됐는지는 추후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하는 사안이다.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려던 정황도 포착됐다. 유증기를 발생시키는 우레탄 폼 작업과 불꽃을 일으키는 용접작업을 동시에 진행한 것. 

이러한 위험에 산업안전보건법은 화재 참사를 막기 위해 화재감시자 배치 기준을 기존 대규모 공사현장에서 모든 작업장으로 확대했다.

또 불꽃이 날리는 거리 안에 가연성 물질이 있다면 사업주는 반드시 화재감시자를 배치해야 하고, 통풍이나 환기가 충분하지 않고 가연물이 있는 건축물 내부에서 불꽃작업을 할 경우, 소화기구를 비치하고 불티 비산방지덮개나 용접방화포 등 불티가 튀는 것을 막는 안전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법령 개정에도 참사 현장에선 화재감시자·안전관리자 배치가 미흡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가족대책위원회는 정부가 건설현장의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지 못해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사고 당시 안전요원이 한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대형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돌아가신 분들의 의미를 찾아주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강화하고 건설안전 관리시스템을 철저하게 관리하길 요청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관계자는 사고로 사망한 근로자의 과거 발언을 인용, “두 달 동안 있었는데 한 달 동안 한 번도 안전관리자를 본적이 없다”며 “협력업체 사람들인데 어떻게 관리·감독하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수사당국에 따르면 화재감시자, 안전관리자를 정상 배치했다는 원청측 주장과 그런 사람을 본 적 없다는 현장 인부 증언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화재 발생 직후 비상대응 체계가 미비한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추정된다. 9개 업체 78명이 한꺼번에 지하 2층∼지상 4층에서 작업하고, 지하 2층에서 발생한 불로 지상 근로자 다수 사망했기 때문이다.

건축법 상 단열재에 대한 별도의 난연재(難燃材) 사용 규정이 빠진 점도 사고의 빌미가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건축법에는 건축물 내·외부 마감재를 불이 붙어도 연소가 잘 되지 않는 난연재로 사용해야 한다고만 규정돼 있는 실정이다.

실제 창고 내부 마감재의 경우 이천 냉동창고 사고 이후 2010년 2월에 3000㎡ 이상, 2014년 8월에는 600㎡ 이상으로 확대했지만, 벽체와 마감재 사이에 설치되는 단열재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빠져있다. 

국토부 건설안전과 관계자는 “건축물 마감재와 단열재에 대한 기준을 빈틈 없이 개선하고 자재 성능 확인도 강화해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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