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 영향으로 냉동공조업계 한파 일어나

1973년 세계적인 에너지 파동을 일으킨 오일쇼크 영향으로 건물에너지의 50% 이상을 소비하는 냉동공조업계에도 한파가 밀어닥쳤다.

침체를 거듭하는 동안 기초가 취약한 설계업계에서는 겨우 건축분야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설비설계의 독자적인 영역확보 문제, 제작업계에서는 국산화, 냉동공조기기의 보급과 성능확보 문제, 시공업계는 독립적인 기업으로 활동할 수 있을 만한 공사물량의 확보와 하도급 문제 등으로 진통을 겪게 됐다.

선진국에서는 에너지 파동 이후 냉난방기기의 효율증진과 에너지절약형 공조방식을 연구하는데 온갖 노력을 경주했지만, 국내에서는 생존의 문제에 봉착해 일량 확보에 여념이 없었고, 저가 하도급이 극성을 부렸다.

에너지 파동 등으로 각종 산업의 발전이 다소 주춤거리기는 했으나 오히려 국제경제 규모가 커지는데 비례해 건물이 대형화되고 설계 규모도 확대됐다. 이에 따라 에너지절약 공조방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일기술연구소에서 1977년 대한화재보험 본사에 적용한 가변풍량 공조방식은 우리나라 최신 공조설비방식의 적용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한편 공기청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1974년 카이스트 반도체 연구실에 최초 클래스 1만급의 실험실이 당시 범양냉방공업과 일본 에어테크놀리지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1977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에 클래스 100의 산업용 클린룸(한일기술연구소)이 설계·시공되면서 제약회사들이 GMP 기준의 클린룸 설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학교에서 건축설비의 강의는 대학에서의 건축과 학생들에 대한 교수가 설비개요를 설명하는 정도로 등한시했으나, 1960년대에 들어 건축설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양대 김봉빈, 연세대 유동열, 홍익대 최상홍, 단국대 박용한 등이 건축과 학생들에게 건축설비를 강의했다.

그리고 1975년 국가기술자격법이 발효되고 공조냉동공학회(현 대한설비공학회)의 노력으로 건축분야에 건축설비종목이 신설돼 건축설비 기사 1, 2급 및 건축설비기술사 제도가 수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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