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한국군이 월남에 파병되면서 에어컨, 냉장고 수리 기술의 월남 특수가 일어나 서울 종로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도심지에 냉동공조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됐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유병호는 1967년 10월 한국냉동공조기술개발협회(현 한국설비기술협회)를 설립하고 최석림을 회장으로 추대해 설비관련 기술자격제도가 전무하던 시기에 고압가스냉동기계기능사 자격제도 시행을 정부에 건의해 이를 법제화하고 이와 관련된 자격시험 업무를 대행함으로써 월남에 주둔한 미군부대 시설의 기술요원으로 취업하려는 수많은 설비기술자를 회원으로 확보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울 시내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및 삼일로빌딩 등 30층 고층 건물이 건설되고 각종 산업현장에서 공조냉동기술자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기술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냉난방기술의 학문적 연구단계가 절실하다는 시대적 요망에 따라 1971년 공기조화냉동공학회(현 대한설비공학회)를 설립하고 서울공대 교수 김효경을 초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1960년대 공조기기 제작회사로는 흥진산업(1966년 국산 제1호 흡수식 냉동기 제작), 천양사, 경원기계(일본 히다치사와 기술제휴), 범양냉방공업, 동흥전기 등이 활동했으며 수입품 국산화 정책에 따라 압축기 등 국내생산이 본격적으로 개시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 공조기기 제조업 분야에서의 수요가 다양해지고 기존 제조회사 이외에 공조기, 송풍기, 온풍기 등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의 수가 증가하면서 일부 시장 질서가 문란해짐에 따라 1975년 한국냉동공조공업협회(현 한국냉동공조산업협회)를 설립해 박승완을 초대회장으로 선임하고 21개 업체가 참여했다.

한편 대구 내외방직공장에 적용한 에어워셔 방식의 공조설비(1968년) 및 대구 파티마병원 공조설비(1969년) 등에는 설계시공 일괄발주방식(턴키방식)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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