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힘든시기 협회·조합 모든 임직원 하나되어 난제 해결
기계설비법, 우리에겐 ‘독립선언’ 4차 산업 주역 도약기대

‘영원한 설비인’이라는 칭송을 받는 이가 있다.

협회 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설비조합을 만들기 위해 국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관련법 개정을 이끌어 냈던 사람, 그렇게 어렵게 만든 공제조합이 갑자기 밀어닥친 IMF 외환위기로 ‘부도’라는 백척간두에 섰을때 밤을 세워가며 대책을 만들고 대안을 실천해 어려움을 극복해 낸 인물.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제3대 회장을 역임한 박인구 고문을 만나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넘기고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담=김흥수 편집국장)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제3대 회장을 역임한 박인구 고문이 지난 24일 기계설비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mjk@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제3대 회장을 역임한 박인구 고문이 24일 기계설비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mjk@kmecnews.co.kr

코로나19 확산으로 요즘처럼 건강이 우려되는 시기가 없었습니다. 제가 고문님을 처음 뵌지가 참 오래됐는데 그때와 거의 변함이 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 역사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드문 유행병으로 인해 국민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의 고통이 많습니다. 저는 협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얻은 지병을 관리하기 위해 매일 2시간여를 걷기 때문인지 아직까지 행동에 큰 불편함 없이 제가 생각하고 바라던 삶의 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협회장 시절에 얻은 지병이라 하셨는데 그 이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그 사연을 말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제가 기계설비건설협회 창립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협회 출범이후에는 회장 취임 이전부터 분골쇄신의 심정으로 노력해 조합 설립과 관련된 법 개정을 이끌었습니다.

정말 천신만고 끝에 1996년 설비공사공제조합 창립총회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설립된지 1년만에 ‘IMF 외환위기’로 큰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기업간 연대보증이란 제도가 있던 시절이라 업체 부도가 도미노 현상처럼 꼬리를 물었고 일반건설업체들의 청구액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러다가 조합이 부도 나면 회원사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기 보다는 피해를 줄텐데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나’하는 책임감으로 밤 잠을 못잤을 정도입니다.

조합 이사장과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대책을 협의했고 협회와 조합의 모든 임직원이 하나가 되어 보증사고 처리에 하루 하루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어느덧 조합 경영은 정상으로 돌아 왔는데 제 몸에 이상이 오더군요. 그후 지금까지 당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병은 얻으셨지만 외환위기와 업계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셨습니다. 당시 대처법과 교훈이 현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될 듯 싶은데요.

-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머리속에 자리잡은 고사성어 하나가 해결해 주지 않았나 싶어요. 온고이지신이란 말이 있지요. 역사를 통해 배우고 실천한 것입니다. 미국의 1930년대는 대공황의 시기로 주가폭락, 세금증가, 지불능력감소, 세수격감, 기업도산 등이 만연했어요. 시장은 제 기능을 잃었고 저축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 시기에 당선된 루즈벨트 대통령은 금융계와 관료들에게 책임을 물었죠. 또 한편으론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그 유명한 ‘노변정담‘이란 이름 붙여진 국민과의 소통을 갖고 뉴딜정책을 펼쳐 공황을 극복해 냈습니다.

저 역시 책임과 의무의 당사자였던 조합, 협회 임직원들과 솔직한 대화를 수시로 가지면서 해결책을 모색했고, 제시한 대안을 하나씩 임직원과 실천해 가며 상당기간 노력했습니다. 고통을 함께 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이 바탕에 깔려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 어렵던 시기에 해외건설시장 진출이라는 쾌거도 이룩해 내셨는데요. 해외 진출을 추진하게 된 동기라도 있었나요?

-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잖아요. IMF 외환위기 이전에 이미 국내 건설시장은 포화상태였고 선진국들의 국내 시장개방이란 압력이 거셌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노동력 위주의 시공에서 벗어나 기계화 시공으로의 전환이 제시됐고 이에 맞춰 부품의 모듈화를 통한 자동화 제작이 급속히 진행되는 추세였습니다. 또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됐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1998년 필리핀 건설협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그곳 시장에 진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어 기계설비업체들이 베트남과 중국 등 해외시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진출해 국내 물량축소에 따른 업계의 경영상 애로를 타개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업계 원로로서 새로운 집행부 출범에 덕담과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협회와 조합의 기틀을 닦았던 한 사람으로서 현재의 조합과 협회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 그때마다 감격스러워 말을 잇기 힘들 정도입니다.

특히 저를 비롯해 협회 창립에 힘을 쏟고 조합 설립에 애를 쓰신 모든 분들이 그당시부터 그토록 염원했던 기계설비법이 다음달이면 시행되는 감격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기계설비법은 기계설비산업 종사자들에게는 기미독립선언서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건축, 토목의 한분야로 취급받던 기계설비 분야가 당당히 독립적인 산업분야로 인정받음과 동시에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이 확대되고 각종 기준 정립으로 기계설비산업이 제자리를 찾음은 물론 4차 미래산업을 이끄는 주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법 제정에 힘써 주신 백종윤 회장을 비롯한 역대 회장들과 관계자들, 기계설비법 시대의 주역이 되는 현재 집행부와 회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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