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선 대한기계설비산업연구원 원장
유호선 대한기계설비산업연구원 원장

정부는 금년 10월 탄소중립녹색성장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2023년 1분기에 마련될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에 부문별 감축수단은 실현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손질하겠다고 했지만 감축목표는 이른바 전진원칙(principle of progression)에 따라 낮출 수 없다.

건물부문 온실가스 감축수단은 ‘국토교통 탄소중립로드맵’에 건물 데이터기반 구축, 신축건물 제로에너지화, 기축건물 그린리모델링 3가지로 제시돼있다.

우리나라 전체 건물 731만 동 가운데 신축 비율은 연간 2.5% 정도이므로 제로에너지화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기간에 걸친 실효적 감축수단은 기축건물 그린리모델링이고 이중에서 20년 이상 경과돼 기계설비가 노후화한 436만 동이 관심의 초점이다.

그런데 현재 시행 중인 그린리모델링 사업은 대상이 일부 공공건물에 국한돼있고 재원도 한정적이며 지원기준인 에너지성능개선 지표도 단편적인 등 한마디로 시범사업 수준에 그치고 있어 의미 있는 감축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또 수년 내에 건물부문에서 획기적인 감축기술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이대로는 2030년 감축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 하에서 체계적인 온실가스 배출감축 방안의 하나로 가칭 ‘건물탈탄소화기준(Building Decarbonization Code)’의 제정을 제안한다.

이것은 건물의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지향적 기준으로서 기존의 ‘녹색건축인증기준’,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및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기준’, ‘건축물에너지절약설계기준’이나 ‘기계설비기술기준’과 같은 에너지성능 향상을 추구하는 제도를 포괄할 뿐만 아니라 한층 강화된 형태이다.

기준이 정립되면 이에 근거해 기축건물의 개보수 시기와 탄소성능 개선요건 충족 등을 의무화하고 이에 걸맞은 혜택지원 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환경과 생활양식뿐 아니라 제도가 상이하기 때문에 건물탈탄소화기준은 국가나 지역별로 마련돼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로드맵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신축 및 기축건물 모두에 대해 탈탄소화기준을 2030년까지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또 매년 전체 건물의 2% 이상을 개보수해 2030년에는 기축건물의 20%가 탄소중립에 준하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는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탈탄소화기준은 단열과 고효율기자재 등 에너지효율 향상은 물론 재생에너지 생산, 전기차 충전, 배터리 저장, 수요반응을 포함한 건물의 전기화 및 전력계통 연계 방안에 더하여 개별 요소가 아니라 건물 전체의 탈탄소화 수준을 규정하는 건물성능표준 관련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

다만 새로운 기준을 개발하고 이를 채택한 정책을 시행하는 데는 상당한 준비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둘러 시작할 필요가 있다.

건물탈탄소화기준의 정립과 이에 근거한 온실가스 배출감축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건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가 미래 상황을 예측할 수 있고 신축 및 개보수 업무를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현재 시행 중인 유사 정책을 일원화하고 제도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예컨대 공동주택 개보수 계획은 재건축 요건 변경에 따라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 제정과 더불어 기축건물 개보수의 탈탄소화 성과 검증에 사용할 신뢰성 있는 평가방법이 확립돼야 한다.

이는 성과와 연계된 지원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고 탈탄소화 수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해나갈 토대가 된다. 당연하지만, 탈탄소화기준은 미래에 개발될 신기술과 변화하는 여건을 능동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갱신돼야한다.

제도 및 정책의 시행과 병행해 대국민 홍보와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해 국가적 탄소중립이 갖는 의미와 함께 개개인 참여의 필요성을 바르게 인식시켜야 한다. 일상생활의 행동이나 습관 변화가 쌓이면 온실가스 배출감축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축 건물의 자발적 개보수를 촉진하는 관건은 앞서 언급한 지원과는 별개로 투자비용 회수기간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저리금융을 제공하거나 탄소가격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다른 사안과도 복잡하게 연계돼있어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 2030년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바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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