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도가 보증을 약속한 2050억원 규모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자금 지급을 미루겠다고 밝히자 채권시장은 큰 발작을 일으켰다.

지자체가 보증한 최고 등급(A1) 채권에 디폴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기업어음(CP) 금리는 한 달 만에 90bp(1bp=0.01%P) 급등하며 4%대에 육박,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당국은 화들짝 놀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채안펀드도 신속히 가동했다.

김 지사는 레고랜드가 전임 지사가 벌인 실패작이라는 이유로 발을 빼려 했다. 문제는 레고랜드 ABCP는 국채에 준하는 채권이라는 점이다. 지자체가 보증했다는 것은 국가가 보증한 것과 같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요즘 채권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다. 금리 인상에 부동산 시장까지 침체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은 더 어렵다. 이런 시장에 국가기관인 지자체가 폭탄을 던진 셈이다.

결국 이번 레고랜드 사태는 김 지사의 입으로부터 촉발됐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김 지사는 지난 21일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ABCP 2050억원을 내년 1월까지 전액 상환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시장의 불신은 뿌리를 내린 상황.

지방자치단체의 신용은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도 불구하고 손바닥 뒤집듯 디풀트 선언을 하고 나서는데, 하물며 일반 기업에 대한 신뢰는 어떻겠는가. 정부와 동일한 신용등급(AAA)를 보유한 한국전력 채권조차 연 6%에 가까운 금리로도 발행목표를 채우지 못했다. 정부의 사태 봉합이 시장 전반의 신뢰 회복까지 이어질지 의문인 대목이다.

특히 신용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건설산업은 치명타를 입었다. 당장 부도가 났거나 부도위기의 건설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로 차주들의 이자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불어나는 이자로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정부의 과감한 조치로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는 있겠지만 고육지책 카드는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위해 최대한 남겨놔야 한다.

이번 레고랜드 사태는 신뢰가 생명인 채권시장에 치명타를 입혔다. 떨어진 신뢰로 신용리스크 프리미엄을 얼마나 더 붙여야 할지 앞으로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가 두려운 까닭이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말이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뜻으로 말조심을 항상 경계하라는 말이다. 미국 월가에서는 ‘스테그플레이션’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조차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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