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과장

박세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과장.
박세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과장.

세계는 지금 기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펼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완성차 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수소시대로 넘어가고 있으며,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 경쟁 또한 치열하다. 가히 기술 패권의 시대이다.

국가 차원에서 기술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업 차원에서 기술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기술은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기술은 보호하는 것이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거래상 지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기술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거래관계에 있는 원사업자가 부당하게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 중소기업은 거래단절 우려 때문에 이같은 요구에 단호히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협상력을 보완해주고 중소기업의 기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2010년에 기술자료 요구·유용 금지 조항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에 신설한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전담조직 설치 등 하도급관계에서의 기술유용행위 금지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해왔다. 올해에도 하도급법령을 개정해 중소기업의 소중한 기술을 더욱 두터이 보호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선 올해 2월부터 원사업자가 기술자료를 제공받는 경우 비밀유지계약을 의무적으로 체결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원사업자가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하더라도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이 그 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요구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수급사업자 요구가 없더라도 원사업자는 하도급법 제12조의3제3항에 따라 의무적으로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 원사업자는 시정명령, 과징금, 벌점과 같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한편 비밀유지계약에는 기술자료의 명칭과 범위, 기술자료 사용기간, 기술자료를 제공받아 보유할 임직원 명단 등 하도급법 시행령 제7조의4에 따른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공정위는 이러한 필수 기재사항의 구체적 내용과 더불어 기술자료의 목적 외 사용금지, 비밀유지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과 그때의 입증책임 등을 명시한 표준 비밀 유지계약서를 마련해 사용토록 하고 있다.

표준 비밀 유지계약서를 사용함으로써 원사업자는 법 위반을 예방하고 수급사업자는 기술탈취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대책들로 언제나 기술유용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법에 대한 부지(不知)에 의한 것이든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든, 원사업자의 우월한 지위를 남용한 기술탈취 행위는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원사업자의 기술유용행위에 직면했을 때 중소기업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대책 역시 필요하다.

기술탈취로 인한 수급사업자 애로 해소를 위해 공정위는 지난 3월 하도급 분야 기술유용 익명제보센터를 설치했다.

공정위 홈페이지에 설치된 익명제보센터를 통해 제보하는 경우, 제보자의 IP주소가 별도로 수집되지 않고 사건 조사·처리 과정에서 제보 내용이 철저히 대외비로 관리돼 제보자의 익명이 보장된다.

거래단절 등 원사업자 보복이 두려워 기술유용 신고를 망설인 중소기업이 있다면, 익명제보센터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를 바란다.

또한 하반기에는 공정위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술자료 비밀보호에 대해 교육할 예정이다. 제조업종을 중심으로 기술자료가 무엇인지 사례 중심으로 설명하고, 기술자료의 비밀관리 방안을 교육한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이 자신의 기술을 스스로 지키는 역량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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