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트·상수도 등 배관 노출 혁신 설계로 랜드마트 우뚝
건출물 수명과 상이한 덕트수명 따라 리모델링…장수명 건축 실현

감춰졌던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더 이상 창피한 일이 아닌 세상이 됐습니다. 과감한 노출패션도 비난의 대상이 아니듯, 건축분야에서도 마감재로 고이 덮어두던 것을 노출시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지는 시대가 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노출콘크리트죠.

이번호에서는 노출콘크리트보다 더 과감하게 모든 설비를 건물 밖으로 꺼낸 건축물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 랜드마크 중 하나이자 파리3대미술관 중 하나인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가 그 주인공입니다. 

일반적으로 배관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둬야 한다고들 인식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보편타당한 인식으로 우리 주변 절대다수의 건축물에서 배관들은 모두 마감재 안쪽에 숨겨져 있습니다. 숨겨져 있다 보니 기계설비를 가리켜 ‘건축물의 혈관’이라고 비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예술의 도시인 프랑스 파리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건축물 안에 숨겨줘야 할 전기 배선, 상하수도 배관을 비롯해 계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을 건물 밖에 설치한 것이죠.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은 틀림 없습니다. 

영국 리처드 로저(Richard Rogers)와 이탈리아 렌조 피아노(Renzo Piano)에 의해 탄생한 이 건축물은 지난 1977년에 완공됐습니다. 앞서 1971년 설계경쟁으로 이같은 혁신적인 설계안을 내 놓은 두 건축가는 당시 고풍스러운 파리 도심에 ‘공장 같은 건물’을 제안하였고 당국이 이를 수용한 끝에 건축될 수 있었습니다. 내부에 있어야 할 기계설비가 외부로 나오는 ‘인사이드 아웃(안팎을 뒤집다)’ 건물의 시초가 바로 이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프랑스 드골 장군에 이어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퐁피두의 이름을 따 퐁피두센터라 명명됐습니다. 

◇ 탄생 배경
퐁피두센터가 1977년 개관할 당시만해도 인근을 지나는 사람들이 ‘대체 이 건물이 언제쯤 완공되는거지?’라고 궁금해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설계됐던 것이죠.

퐁피두센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당시 문화부가 재래시장으로 사용되던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대통령이던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재임기간 1969~1974년)은 “파리가 예전처럼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려면 사무실만큼 미술관도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철학이 반영된 셈입니다. 

당시 응모작만 681점에 달할 정도로 출품이 몰렸는데, 영국과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의 작품이 선정됐습니다.

이들은 각종 배관 설비와 통로, 전기시설 등에 쓰이는 철제 파이프들을 바깥으로 드러내놓고 기능에 따라 다른 색깔을 칠해 구별하는 특이점을 내보였습니다. 

환기덕트는 바람이 드나드는 것에서 착안해 파란색으로, 물이 지나가는 상하수도 배관은 초록색으로, 전기 배관은 노란색, 소방설비, 비상 통로는 빨간색을 입혔습니다. 

건물 내부는 천장이 높고 탁 트여 있어 가림막이나 이동용 벽을 활용해 자유롭게 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 비결 중 하나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까지 모두 건물 바깥에 두었기 때문이죠. 

이런 모습은 건물 뒤편에서 더욱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튜브 모양의 배관설비들이 각양각색을 띄며 지하부터 옥상까지 연결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죠. 

◇ 건축물 장수명화에 기여
건립 당시 주변의 역사적인 도시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대 여론이 무척이나 거셌다고 합니다. 예술의 도시라 하더라도 퐁피두센터의 외관은 파격적이었고, 독특했다는 반증이겠죠.

하지만 이러한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외관으로 인해 퐁피두센터는 지금까지도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퐁피두센터는 전면 리모델링을 위해 오는 2023년 말부터 문을 잠시 닫기로 했습니다. 지난 1977년 개관한 퐁피두 센터의 뼈대를 이루는 배관들이 점점 녹슬어 공사를 더는 미루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죠.

리모델링은 퐁피두센터를 개관한 상태에서 보수하거나, 폐쇄한 채 보수하는 두 방안을 놓고 고민하였지만, 시간 단축과 경비 절감을 위해 전면 폐쇄가 결정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지 보수적인 측면에서 효율성을 높인 설계 덕분에 40년 넘게 센터가 운영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개관 20년인 1997년에도 한차례 보수공사를 단행하였습니다. 내부공간 확장 등을 위한 리모델링과 함께 녹슨 배관 교체공사가 진행됐죠.

하지만 낡으면 가장 먼저 문제를 일으키고 수시로 점검해야 하는 기계설비를 아예 외부로 노출시킨 덕분에 유지보수가 쉬웠다고 하네요. 이번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다시 재개장하는 시점은 2027년으로 예상됩니다. 

퐁피두센터의 특이점은 장수명주택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내부공간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게 건물 내부에 내력벽이 없고 배관 수리가 용이해 오래토록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술적 차원을 넘어 건축적 차원에서 한 차원 높은 프랑스의 건축문화를 자랑하는 대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건축가의 의중이 반영된 것입니다. 렌조 피아노는 앞서 1차 보수공사 때 “센터를 하나의 빌딩으로 인식하지 않고 필요할때마다 언제든지 변경 가능한 거대한 기계로 봐달라”고 말하며 “사반세기(25년)마다 한번씩 기계를 멈췄다가 재가동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기계설비의 노후에 따라 점검과 유지보수를 통해 센터의 성능이 일정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 특별한 설계
설계는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많습니다. 센터 정면에는 6m 간격으로 기둥을 나열돼 있습니다. 횡력에 대응하기 위한 브레이스(Brace)가 있는데, 측면에서도 있어 구조적 안정성을 높였습니다. 

퐁피두 센터 내부에는 50m 경간에 달하는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높이가 2.3m에 달하는 워런(Warren) 트러스가 설치됐습니다. 대체로 교량에서 볼 수 있는 설계방식이 건축물에 도입된 특이한 설계입니다. 

기둥에는 게르베레테스(Gerberettes)라고 하는 캔틸레버 브래킷(Barcket)이 달려 있어요. 기둥에 회전단으로 부착돼 기둥을 중심으로 회전할 수 있죠. 이 브래킷은 기둥 안쪽으로 트러스 부재와 회전단으로 접합돼 트러스가 힘을 받으면 저울이 아래로 기우는 것처럼 밑으로 처지게 됩니다. 따라서 브래킷이 오른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바깥쪽에 연결된 타이 로드(Tie rod)가 아래쪽으로 당겨져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퐁피두센터는 파리 시내 전경을 보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이동하는 동선으로, 맨 위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앞쪽에는 세인트 메리 천주고 대성당(Église Saint-Merry)이 있고, 왼쪽편 멀리에는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이 보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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