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굴지의 대기업부터 우아한형제들, 마켓컬리 등 유망 스타트업까지 국내 경제계를 대표하는 76개 기업이 모여 ‘신(新)기업가정신’을 선언하고 관련 협의체인 ‘신기업가정신협의회’(Entrepreneurship Round Table·ERT)를 공식 출범시켰다.

참여 경제인들은 이날 선언문에서 “지금 우리는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인구절벽 등 새로운 위기와 과제를 맞이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도 그 역할을 새롭게 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위한 5대 실천 명제로 △혁신·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가치 제고 △외부 이해 관계자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통한 윤리적 가치 제고 △조직 구성원이 보람을 느끼고 발전할 수 있는 기업문화 조성 △친환경 경영 실천 △지역사회 동반 성장 등을 제시했다.

경제계가 정부의 규제와 국민의 반기업적 정서 탓을 하지 않고 자율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반갑고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고 어떤 기업가 정신이 발휘됐는지는 경제개발 과정을 반추하면 쉽게 파악된다. 경제개발계획 시행 초기 기업가 정신은 ‘사업보국’으로 기업을 키우는 일이 나라에 보은하는 방법이었고 국가와 국민은 기업 성장과정의 부작용을 눈감아 줬다.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양극화 해소가 화두로 떠올랐고, 최근에는 계층간, 세대간, 성별간 갈등의 부각과 함께 환경 위기론이 인류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다.

유럽 등에서는 이같은 상황에 맞춰 이미 기업이 ‘환경보호(Environment)’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공헌(Social)’ 활동을 하며 ‘법과 윤리를 철저히 준수(Governance)’하여야 한다는 ESG 경영이 보편화된 상황이다.

한국 재계가 선언한 신기업가정신은 ESG 경영을 뛰어 넘어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2019년에 주창한 사회적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정신을 수용하겠다는 내용을 차용했다. 이는 기업경영 방침을 주주 중심에서 주주, 고객, 협력업체 등 사실상 모든 사회구성원을 뜻하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봉사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생존과 지속성장을 위한 이익은 추구하겠지만 탐욕을 빼겠다는 의도이다. 그렇다면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은 더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과연 신기업가정신협의회에 참여한 기업들이 고착화된 갑을관계에서 벗어나 협력업체와 공존, 공영을 위한 상생협력을 추구할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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