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은 세계적 흐름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임기 막판 탈원전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탈출구가 필요했던 걸까.

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회의’에서 지금까지 유지했던 탈원전정책 기조를 뒤집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원전 활용과 가동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안보 위기가 높아지자 절박한 마음에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 정책 실패를 자인한 꼴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때 탈원전정책인 ‘원자력 제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집권 이후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5·6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국내 원전 감축에 앞장섰다.

그간 전문가들과 산업현장에서 원전 생태계 파괴 우려를 지속적으로 내비쳤다. 한전과 한수원 등 국내 공기업 수장들이 반발했지만, 정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국내 원전 생태계는 철저히 파괴됐다.

세계 최초로 3세대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우리나라도 정부 정책에는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원전 설계·시공능력을 갖춘 부품업체들은 줄도산했고, 두산중공업도 직격타를 맞았다. 한전도 탈원전정책 영향을 받아 대규모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한전은 지난해 5조8000억원 규모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원전보다 가격이 비싼 신재생에너지 구입비용 증가로 부채가 146조원까지 늘었다. 연료비와 전력구매비가 늘면서 전기료 인상 요인이 충분했지만 정부는 이를 억제했다.

한전 적자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올 1분기 5조3329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등 적자 규모는 연간 20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정책 과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문 대통령이 원전 생태계 현실을 뒤늦게 깨달은 탓에 피해는 온전히 기업에 전가됐다. 차기 정부는 원전산업의 향방을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았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도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임기 동안 망가진 원전업계 생태계 책임을 어정쩡한 말 한마디로 넘기겠다는 의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결국 정부가 몰아붙인 탈원전정책은 허상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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