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필히 스스로를 업신여긴 후에야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
(인필자모연후인모지 人必自侮然後人侮之) - 맹자(孟子) 이루(離婁)ㆍ상(上)

이소영
문화로드 대표
교육학박사

맹자는 자신에게 스스로를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남들이 나를 업신여긴다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를 존중하고 말과 몸가짐을 바르게 마음을 돌보면 남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하지만, 반면 스스로를 비하하고 제멋대로 하면 남도 내게 막말을 하고 깔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내 팽개치고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10월에 개봉해 지금도 절찬 상영 중인 영화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렉에게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동안 조커가 등장하는 영화는 많았지만 악당 조커가 되는 과정을 들려주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영화가 아서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그의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에도 관객은 쉽게 수긍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아서는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고 이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워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고 싶지만 남들을 웃기는 재주가 없다.

코미디언은 남을 재미있게 하거나 자신을 웃음 재료로 삼을 수 있어야 하는데, 병적웃음이나 우울증을 지닌 아서는 코미디에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아서는 괴로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않는다. 코미디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어서 불안하고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그는 코미디언보다 단지 유명해 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서는 광대분장을 한 상태에서 자신을 집단폭행한 청년들을 우발적으로 죽이게 된다.

그는 자신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대상을 완전히 제거하는 살인을 통해 불완전감을 상쇄하고 전능감을 경험한다. 언론은 그의 살인이 빈부격차 때문이라며 추켜세운다. 아서는 의도하지 않게 유명해진다. 아니 아서가 아니라 근거도 분명하지 않은 언론의 보도로 탄생한 조커가 유명해진다.

아서는 거울 속에 비친 조커를 보고 기쁘게 웃으며 춤을 춘다. 대중의 관심과 환호에 잠시 우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아서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아서는 살인자 조커를 선택하고 자신을 외면하고 내팽개친다.

아서는 광대분장을 하고 토크쇼에 출연한다. 아서는 자신의 범죄를 밝히고 생방송 도중 자살을 하려고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행자가 아서를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자 진행자를 쏴 죽인다.

아서는 우발적이거나 분노의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 광대분장으로 자신을 감춘 모습으로 살인을 한다. 누구나 의도한 바가 실현되지 않으면 불쾌한 감정이 생긴다. 불쾌한 감정 상태에서 하는 말이나 행동은 항상 후회를 남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극히 갈린다. 부서진 경찰차 위에서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두 팔을 벌려 웃음 지어 보이는 모습에는 아서는 사라지고 보통 명사인 조커만 남는다.

누구나 분장만 하면 조커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누구도 살인마 조커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몰인정한 주변사람들과 타락한 사회가 아서를 살인마 조커로 만들었다는 평도 많다.

영화에서 조커가 되기 전의 아서는 1초도 행복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누구나 행복은 추구하고 슬픔은 회피한다.

그럼에도 아서가 병적웃음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자신을 회피하지 않고 슬픈 마음을 돌보았다면 아서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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