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 이동락 회장]
독립법인 ‘대한설비공사협회’ 창립

1985년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설립되면서 전문건설 19개 업종 중 설비업종에서도 ‘설비공사업협의회’가 구성됐다. 협의회 초대위원장에는 이후 대한설비공사협회 초대 및 2대 회장을 지낸 대일공무 이동락 대표이사가 선임된다.
설비공사업을 위한 독립 기구를 요구하는 기계설비인의 뜻을 모아 1989년 11월 ‘대한설비공사협회’를 설립한 이동락 회장은 기계설비산업의 홍보를 위해 1990년 5월 ‘월간 설비공사(기계설비 전신)’를 창간, 회원사의 권익보호와 위상 향상에 매진하게 된다.
특히 1993년 중앙 정부 행정쇄신위원회에 ‘기계설비 분리발주’를 국민제안으로 건의하고, 그 이듬해인 1994년 4월 ‘하도급에 의한 기계설비 시공은 정밀시공과 효과적인 품질관리가 미흡하므로 기계설비공사는 분리발주 하도록 하라’라는 정부 방침을 이끌어 냈다.
그때까지 기계설비공사의 분리발주를 금지하고 있던 예산회계법시행령도 같은 해 6월 30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개정, 공포됨으로써 기계설비공사의 분리발주가 가능해지는 근거를 만들었다.


[3대 박인구 회장]
96년 5월 ‘공제조합’ 설립…해외사업 첫단추

1996년 3대 회장으로 추대된 박인구 삼원설비 대표는 취임 첫해인 1996년 5월 기계설비업계를 위한 경영지원과 해외진출, 기술개발에 대한 자금지원을 뒷받침하게 될 ‘설비공사공제조합’을 설립한다.
당시 조합은 전문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설비공사업체의 출자지분을 이체받아 1996년 7월 1일부터 조합원의 각종 보증과 융자업무를 직접 수행하기 시작했다.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으로 가스시설시공업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협회명을 ‘대한설비공사협회’에서 ‘대한설비건설협회’로 바꾸게 된 것도 이 시기(1998년)다.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도 박인구 회장 재임 시절이다.
대한설비건설협회는 1998년 필리핀건설협회, 베트남건설협회와 각각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냉난방, 배관 등 건축설비공사와 플랜트 설비공사분야에서 양국 기업간 상호협력을 촉진하고, 협회간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키로 하는 등 해외사업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4대 홍평우 회장]
설비건설회관 개관…분리발주 활성화 분위기

1999년 4대 회장으로 추대된 홍평우 회장은 그해 10월 기계설비인의 자부심이 되는 ‘설비건설회관’을 개관한다. 현재의 자리인 서울시 강남구 청담 2동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개관한 설비건설회관에는 대한설비건설협회 본회와 서울시회,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본부와 지점이 입주했다.
홍평우 회장 재임 시절, 협회는 우정사업본부, 교육부 등에서 분리발주를 시작케 하는 등 기계설비 분리발주가 점차 활성화되는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또 2000년에는 중국 안장협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해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2000년 2월 조달청과 입찰정보 전용 전산망 구축을 위한 조인식을 갖고, 인터넷 전산망을 통한 입찰정보 교류를 시작했다.

 

[5대 정승일 회장]
협회 CI 변경…설비건설회관 증축 준공식

2002년 제 5대 회장으로 추대된 정승일 회장은 2003년 4월 협회의 상징인 심볼마크와 로고체 등을 현재의 CI로 변경하고, 선포식을 가졌다.
새롭게 선정된 CI는 간결하면서도 역동성 있는 기계설비의 이미지를 잘 담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2004년 11월, 협회는 창립 15주년을 맞아 설비건설회관 증축 준공식을 가지게 된다. 증축된 회관은 설비건설회관 이미지에 걸맞게 환경친화적인 냉난방과 환기시설, 방음창호, 엘리베이터시설, 주차시스템 등이 보강됐다.


 

 

[6대 박종학 회장]
기계설비업, 건설산업 중심 축 ‘각인’

6대 회장에 추대된 박종학 회장은 △건설공사 재해율 제도 폐지 △국민연금·건강보험료 개선 등 기계설비인의 현장 속 고충을 해결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2006년 9월에는 인터넷 증명발급 서비스를 구축함으로써, 회원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건설공사실적확인서’ 등 10여종의 증명서를 실시간으로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
협회는 2016년 9월 일반·전문간 겸업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의 건산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기계설비업에 대해서만 겸업제한 폐지를 4년 동안 유예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기계설비분야가 건설산업의 중심 축인 주요 공정으로 확실히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7대 강석대 회장]
‘기계설비시공관리기준법안’ 입법 추진

제38회 정기총회에서 7대 회장으로 추대된 강석대 회장은 협회 최초로 집행부 워크숍을 개최, 설비건설 발전방안의 큰 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강석대 회장은 현재 기계설비법 제정의 초석이 되는 ‘기계설비시공관리기준법안’을 2009년 의원입법으로 추진하게 된다.
협회 창립 이래 최대 숙원사업이었던 기계설비 관련 독립법 제정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그 해는 협회가 창립된 지 꼭 20년이 된 해이기도 해서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이러한 시도가 밀알을 되어 2018년 4월 기계설비법이 제정됐다.

 

[8대 정해돈 회장]
국정과제에 공공공사 분리발주 법제화 반영

2011년 8대 회장으로 추대된 정해돈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2012년 8월 설비건설업 전산등록시스템을 구축, 협회를 방문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등록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2013년에는 박근혜 정부의 140대 국정과제에 공공공사 분리발주 법제화를 반영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계기로 협회는 설계서가 분리된 기계설비공사의 분리발주 영역을 넓혔고, 각 중앙부처의 사업계획 때 분할·분리계약 가능성 검토를 의무화시켰다.

 


[9대 이상일 회장]
연구원 설립·기계설비인의 날 제정

2014년 제 9대 회장으로 이상일 정도설비 대표가 추대됐다.
이상일 회장은 2015년 3월 협회의 명칭을 현재의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로 바꾸게 된다.
2015년에는 기계설비산업 발전을 위한 싱크탱크로 활약하게 될 ‘기계설비산업연구원’을 설립하고, 2016년에는 기계설비인의 노고를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홍보관을 개관했다.
무엇보다 이상일 회장은 기계설비산업의 위상을 강화하고, 자긍심을 고취시키기위해 국토교통부와 협의 끝에 2016년 ‘기계설비의 날’을 제정하게 된다.
‘기계설비의 날’은 이후 기계설비산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대내외에 새롭게 인식시키고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상일 회장은 이를 기점으로 기계설비법 추진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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